평화기억 이야기[인터뷰_지희경] 희경을 만나다

희경의 할아버지 박기철(1943년생)은 돌아가시던 그해 초에 국가보훈부(당시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행정 심판을 제기했다. 행정사무소와의 계약서에는 ‘고엽제 재확인/신규 등록신청’등을 의뢰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틀 후 할아버지는 중앙보훈병원에서 진료기록사본을 발급받았다. 2020년 11월 17일부터 2022년 1월 5일까지 총 7회 피부과 진료를 받은 기록이었다. 두드러기, 온몸 가려움, 종기 등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진단서에는 ‘상세불명의 피부염’이라는 진단명이 써 있었다. 그보다 앞선 2017년, 할아버지는 서울지방보훈청에 ‘고엽제후유증 상이등급구분 신체검사 결과’와 관련한 우편물을 받았다. ‘당뇨병’에 대한 등급인정을 요청하였으나 등급기준미달 결정 통지를 받은 것이다. 이전에 제기한 적이 있던 듯 ‘재확인’ 통지로 구분되어 있었다.


희경은 서류 뭉치들 사이에서 할아버지가 남긴 흔적들을 퍼즐 조각 맞추듯이 맞추어본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관심갖지 못했고, 그래서 알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쟁 이후, ‘보훈’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보상체계에 편입된 이들에게 ‘아픔’과 ‘질병’은 증명하고 인정받아야 효용을 갖는 것이었다. ‘보훈’이라는 포장을 한 겹 벗기니 ‘명예’와 ‘애국’이 아니라 질병과 등급으로 줄세우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희경의 할아버지는 행정소송을 마치지 못하고 2022년 7월에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3개월 투병 후 돌아가시게 된 사인은 ‘담관암’이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일로 생겨난 질문들을 따라 걷다보니 아카이브평화기억과 만났다. 올해 희경은 참전군인 구술활동과 함께 영상, 전시 기획에 함께하며 더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앞으로 희경이 펼쳐갈 이야기를 기대하며 그를 만나본다.


지희경


지희경

인연의 시작은요.

제 할아버지는 베트남전 참전군인이에요. 2022년도에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담도암으로 투병하시다 돌아가셨죠. 항암치료를 위해 보훈병원에서 통원진료 받으실 때, 할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장례를 꼭 보훈병원에서 치러달라고, 그리고 현충원에 안장해달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할아버지에게 참전 경험은 명예스러운 일이었고 할아버지 삶을 지탱하는 큰 부분이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참전 수당을 할머니가 받으실 수 있도록 가족들이 행정 처리를 도와드리던 날이 이어졌는데요. 서류를 떼고 이런저런 절차를 밟으면서 제게는 작은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 돈이 정말 한 사람의 목숨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명예스러운 것일까?’하고요. 


할아버지는 참전을 ‘명예’라고 부르셨고 국가는 ‘애국’이라 이름 붙였지만, 제게는 청년들을 값싼 비용으로 타국의 전쟁에 동원한 것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할아버지를 잃고 나니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다른 참전군인들의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왜 베트남에 가게 되었는지, 고엽제는 어떻게 맞게 되었는지, 귀국 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는지 등 많은 것들을 묻고 싶어졌습니다.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 베트남전쟁 전시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고민은 자연스레 아카이브평화기억의 구술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해에서 올해로 구술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러한 물음을 안고 2025년에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구술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는 참전군인을 직접 섭외해보는 것부터 시작해요.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참전군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시간과 공을 들여 만남으로 이어가는 것부터 말이죠. 저의 첫 구술활동은 이재춘, 석미화 선생님과 함께 광주에 거주하시는 참전군인 진재길 어르신과 부인 최명순 어르신을 뵙는 자리였습니다. 진재길 어르신은 재춘 선생님이 면담을 이어오시던 분이었는데, ‘필담’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것에서 말이 겹치지 않는 구술 현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팀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광주로 내려가는 길에 재춘 선생님이 공유해 주신 이전 녹취록을 읽었습니다. 작은 소리 하나, 음절 하나까지 꼼꼼하게 담긴 녹취록을 보며, 듣고 기록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조금은 무겁고 긴장된 마음으로 진재길 어르신을 찾아뵙게 되었어요. 구술 현장에서 저는 질문하기보다 선생님들과 진재길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많았어요. 전쟁과 군대 용어가 낯설어 어떻게 대화에 참여해야할지 몰랐고, 무엇보다 글을 써 내려가는 어르신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어요. 어르신이 펜으로 적어준 이야기를 한 글자씩 따라 읽어갔어요.


트라우마로 진재길 어르신의 경제 활동이 어려웠고, 최명순 어르신은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삼 남매를 키워야 했요. 너무 힘들어서 그 시절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만남이 거듭될수록 최명순 어르신과 진재길 어르신은 조금씩 저희에게 마음을 열어주셨어요. 그걸 아마 저희 모두가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자리에 있던 재춘 선생님과 미화 선생님은 두 분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분노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더 적극적으로 질문하기도 하며 온몸으로 공감하려고 했던 것이 기억나요. 어떤 기억은 말로 꺼내기엔 너무 무거워 침묵으로 굳어버리기도 하고, 그때의 힘듦과 아픔을 다시 말하는 일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동시에 자기 치유의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을 엿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의 무게를 나눠 갖는 것으로서의 듣기가 참전군인과 그의 가족에게 필요하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구요.


작년의 구술활동은 능숙한 선생님들 곁에서 구술을 듣고 곱씹는 시간을 보냈다면 올해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걸음이 어디를 향할지 모르겠지만, 더 적극적으로 듣고, 질문도 적극적으로 하면서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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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활동 현장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어요.

저는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대상과 스스로의 몸으로 경험한 대상의 차이를 시청각 언어로 번역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렌즈가 포착하지 못하는 (비가시적인) 영역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이미지와 사운드가 지닌 다양한 해석의 범주를 실험하고 있어요. 


구술활동을 시작하면서 ‘국가가 서사화한 베트남전쟁이 무엇인지?’, ‘한국 참전군인은 어떤 이미지로 굳어졌는지?’와 같은 질문이 생겼어요. 최근에는 이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참전군인 당사자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온 사람들을 2차 증인으로 두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진행하고 있어요.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이들이 타인의 전쟁 경험을 어떻게 자신의 기억처럼 내면화하고 재구성하는지를 말이죠. 2차 증인들의 목소리를 빌려 참전군인이 누구인지 이야기해보고자 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제작진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해요. 이를 통해 스크린 밖의 관객들에게 ‘이 역사에 당신은 어떻게 연루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카메라 뒤에 있는 제작진,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을 또 다른 증인으로 호명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입니다.



함께 일하며 ‘듣는 자리’를 어떻게 전시로 구현할까 고민해요. 

3월부터 아카이브평화기억 사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왠지 모르게 오래전부터 함께 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마도 그만큼 단체에 잘 스며들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3월과 4월에는 ‘2026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구술 활동에 함께해 주신 시민분들과 온라인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어요. 베트남전쟁에 대해 공부하고 작년 구술 활동에 참여했던 분들의 경험담을 나누며 찬찬히 참전군인분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올해 팀을 구성해 함께 온 힘을 쏟으며 준비하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그동안 아카이브평화기억이 만난 참전군인(과 가족)의 구술 기록을 아카이브 전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역사책이나 전쟁기념관에서 볼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전시장 자체를 ‘듣는 자리’로 만들려고 해요. 관객분들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전시를 관람하셨으면 해요. 한 개인의 삶과 경험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 몸을 관통해 온 근현대사의 여러 궤적을 짚어보고, 구술 현장에서 면담자가 마주하는 어려움과 당혹스러움, 복잡함의 감정을 경험하는 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10월 즈음에 열릴 전시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이 글은 서면 인터뷰로 작성하였습니다.

모두글 석미화 인터뷰글 지희경